3대째 이어온 전통비법 변함없이 지켜온 맛, 백년가게 ‘중앙집’

Section 4.

어디까지 먹어봤니


백년가게
중앙집

3대째 이어온 전통의 비법
변함없이 지켜온 맛
SINCE 1972

아끼던 골목이 흔적 없이 사라진 자리, 유행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속속 거리를 파고든다.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한 포물선을 그리는 도시 풍경은 우리를 속도의 절벽에 몰아세우기도 한다. 한세월을 묵묵히 견디고 우뚝 서 있는 고목처럼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그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노포’라고 부른다. 그들은 어떻게 사람을 잇고, 마음을 잇고, 시대를 이을 수 있었을까?

진주교를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가 단정히 적힌 “중앙집” 간판이 보인다. 흔한 미사여구 하나 없이 오로지 이름만 알린다. 평생 베풀며 살아온 사람, 김장하 한약사도 단골이라는 이 집의 오랜 매력은 무엇일까? 내부에 들어서자. 특별한 것은 없다. 깔끔한 실내에 네모난 탁자가 예닐곱 개 놓여 있고, 안쪽으로는 단체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넓은 홀이 있다.

변함없이 지키는 것
화려하지 않아도 정갈하게

메뉴도 단출하다. 초밥과 매운탕 그리고 어묵 백반이 전부이다. 손님의 기호에 맞추다 보니, 생선, 모둠, 새우, 유부 등 종류를 나누었을 뿐. 갓 찧은 쌀로 고슬고슬한 밥을 짓고, 항아리에 숙성된 단촛물만 이용하는 기본적인 공정에는 변함이 없다.

초밥에 올리는 회는 흰 살 생선의 대표 격인 광어를 쓰고, 한여름에는 제철 농어를 사용한다. 횟감을 손질해 반나절 저온에서 숙성시키면 살결이 부드럽고 쫄깃한 선어회로 변신한다. 손님이 주문하면 즉석에서 초밥을 만들어 낸다.

그야말로 기본에 충실한 군더더기 없는 초밥이다. 초밥에 곁들이는 얇게 저민 생강초절임, 새콤한 염교, 부추겉절이, 검정콩 자반 등 푸짐한 밑반찬이 한 상 차려진다. 손질한 광어 뼈와 가자미를 통으로 넣어 오랜 시간 끓여 낸 얼큰한 매운탕은 한번 맛보기 시작하면 숟가락질을 멈출 수 없을 만큼 중독성이 있다.

찬 바람 불면 많이 찾는다는 어묵국 또한 묵직한 국물 맛으로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자랑이다. 여기에 이 집만의 특제 된장소스에 어묵을 살짝 찍어 먹으면 이 또한 별미이다.

2대 주인장 김미점(56)씨는 매일 아침 8시면 가게 문을 연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모닝커피를 마시며 가게 안팎을 청소하고, 주문한 재료를 살핀다. 남해안 멸치와 하얀 분이 나는 다시마, 뒷맛을 깔끔하게 하기 위한 무도 큼직 막 하게 썰어 육수를 우린다. 미점 씨는 불 앞을 떠나지 않고 육수가 우러나는 걸 지켜보며 부지런히 불순물을 걷어낸다.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큰 키에 맑은 눈방울, 눈가에는 웃는 모양으로 주름이 졌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맛
끝까지 주방을 지키는 일

1대 주인장 서선이(90) 씨의 대를 이어 17년째 가게를 꾸려 오고 있다.

“운명처럼 진주로 오게 되었죠.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어요. 저는 원래 부산이 고향이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부산은 늘 시끌벅적하고, 사람도 많고, 다들 목소리도 크고요. 좀 정신이 없죠.

남편 초대로 진주에 처음 놀러 왔죠. 고속버스 터미널에 딱 내리고 보니, ‘아. 여기는 아직 시골이구나 싶었어요.’ 그 당시 신호동도 중앙로터리에 딱 하나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중앙시장 국민은행 건너편에 ‘아리아’라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남편이 청혼했죠.”

“처음 와 본 진주가 낯설지는 않았어요. 사람들도 순박하고, 도시 전체가 여유가 있는 느낌 그런 게 참 좋았어요. 연애는 짧았어요. 정말 번갯불에 콩 볶듯 남편과 만난 지 42일 만에 제가 머리에 면사포 쓰고, 웨딩드레스 입고 예식장에 입장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1991년이었죠. 인연이고, 운명이라 생각해요.”

결혼하고 처음에는 가게에 못 오게 하셨어요. 그때는 제가 아이 낳고 키우느라 괜히 오면 고생시킨다고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시누이도 진주에 있고 해서 저도 가끔 가는 정도였죠. 어머니께서 그때는 냄비에 밥을 하셨거든요. 그러면 냄비에 눌어붙은 누룽지가 맛있잖아요. 어머니가 그걸 모아서 저 먹으라고 챙겨주시고, 예쁨을 많이 받았죠. 시누이도 친구처럼 잘 대해 주시고. 그렇게 진주에 정을 붙였죠.

“혜리야, 욕봤다.”

어느 정도 아이들이 자라 제가 여유가 좀 생기면서 가게에 나가기 시작했죠, 가게 일을 거들던 시누이가 남편 직장 때문에 갑자기 부산으로 이사를 하기도 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가게에 늘 나오게 되었어요. 어깨너머로 어머니 하시는 걸 많이 지켜봤죠. 초밥을 3초의 미학이라고 하잖아요. 어머니 손에 딱 쥐면 밥양이 정말 일정하더라고요. 처음엔 그게 너무 신기했죠.

어머니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 주는 걸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인정이 많으세요. 손님들한테나, 함께 일하는 직원들한테도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셨죠. 그런 것들이 음식에도 전해지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팔순이 되시면서 허리가 많이 굽어지셔서 현업에서는 은퇴하시고, 어쩌다 가끔 가게에 오세요. 오시면 항상 저한테 ‘혜리야(손녀 이름), 욕봤다’라며 보듬어 주시죠.

우리 집은 도시처럼 화려한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에요. 몇 해 전 방송에 소개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다음날 멀리 강원도에서 오신 손님이 있으셨어요. 그 기대에 맞출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어머니 청춘을 쏟아부은 세월 자그마치 51년, 어머님이 맨땅을 일구느라 애쓴 그 마음 알기에 그 맛 그대로 변함없이 지켜가고 싶어요.

나도 내가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지.

이 가게를 처음 운영했던 서선이(90) 씨는 미점 씨의 시어머니시다. 어느 날. 시아버지(故 주도균)가 돌아가시고 어린 네 남매를 키워야 했다. 슬픈 마음도 잠시, 자라나는 아이들 배는 굶길 수 없었다. 서선이 씨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마침 친구의 남편이 일본에서 일식 요리를 배웠다고 해서 친구를 찾아간다. 2년 동안 친구 가게 일을 도우며 기술을 익혔다.

1972년 11월 옛 중앙극장 옆 5평 단칸방에서 첫 가게를 시작하다 극장 이름을 따서 ‘중앙’ 집으로 상호를 정했다. 당시 일식 요리는 고급 요리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진주 사람들은 첫 월급 타면 외식하러 오는 집이 ‘중앙집’ 이기도 했다. 서선이 씨는 고민 끝에 서민들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초밥’에 대해 궁리했다.

근처 중앙시장은 남해안에 올라오는 싱싱한 수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원재룟값을 아낄 수 있고, 주변 사람들도 근처 직장인들이나 시장 상인들이기에 그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했다. 흔한 말로 “박리다매”, 그는 누구나 배불리 초밥을 먹을 수 있게끔 하고 싶었다.

처음 하는 식당이라 막막했지만, 서선이 씨의 진심은 사람들에게 통했다. 내부 자리가 좁았지만, 사람들은 불평 없이 초밥을 먹기 위해 가게를 찾았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고, 자리가 잡히려고 하면 건물 주인이 일방적으로 쫓아내기도 했고, 장사 밑천을 꾀어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언 50여 년이 흘러 무려 9번의 이사 끝의 지금의 위치에 정착할 수 있었다.

“옛날부터 묵던 거 주이소.”

우리 집에 지금 오시는 분들이 3대에서 4대까지도 있으세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하실 던 때 오신 분들이 그때는 청년이셨는데, 지금은 손자, 손녀 데리고 오기도 하시고, 식당에 오시면 단골들은 이렇게 주문하세요. “옛날부터 묵던 거 주이소” 그럼 네 하고 초밥이랑 매운탕 갖다 드리죠. ‘서선이 여사님, 잘 계심미꺼?’ 어머니 안부도 물어보시죠.

어머니 때부터 가게 오신 단골분들은 사실 저보다 우리 가게를 더 잘 아세요. 정말 이웃사촌 같은 느낌, 먼 친척 같은 느낌이 들고 든든하죠. 사실 제가 가게를 하게 되었을 때 오랜 단골손님들이 “맛이 변했네!” 그럴까 봐 제일 조심스러웠죠. 그래서 더 한결같이 어머니 하시던 방식 그대로 이어가려고 해요.

자주 오시던 손님이 안 보이시면 “어? 오실 때가 됐는데? 왜 한참 안 보이시지?” 안부가 궁금하죠. 그럴 때 마침 그분이 오시면 “요새는 통 안 보이셨어요? 한참 동안 안 오셨죠?” “맞제? 내가 좀 아파서 한동안 병원에 있어서 못 왔다.” 하시죠. 서로 걱정하기도 하고, 오랜 정이 이런 건가 봐요.

얼마 전에는 어떤 남자분이 초밥 포장을 특별히 부탁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시는데 우리 가게 ‘초밥’이 생각난다고 하셨나 봐요. 그럴 땐 마음이 뭉클하죠.

이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느낌이 들어요. 애초엔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가게가 된 것 같아요. 초밥을 통해 작은 위안을 건네는 것, 그건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거잖아요. 늘 기쁜 마음으로 가게에 나와요. 정말로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잖아요.

살아생전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식당이었는데,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찾아오기도 하죠. 이렇게 비 내리는 날이면 친구들하고 밥도 먹고, 소주 한잔하기도 좋지요.

60대 후반, 창원 거주 김 모 씨

결혼해서 함안에 살고 있는데, 친가가 진주라, 고향 오면 한 끼 정도는 여기서 꼭 먹고 싶어서 찾아오죠. 아직 그대로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요.

40대 초반, 함안 거주 이 모 씨

취업 준비하면서 데이트할 때 둘 다 돈은 없고, 초밥은 먹고 싶고, 그럴 때 생각나서 왔죠. 둘이 자전거 타고 남강도 둘러보고. 옛날 맛 그대로예요.

40대 초반, 진주 거주 하 모 씨

Since 1972

중앙집

위 치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73번길 6
영업시간 : 11:00 ~ 21:00 (매주 일요일 정기휴무)
가 격 :
매운탕 9,000원 · 어묵백반 8,000원 · 모둠초밥 11,000원
문 의 :
055-741-5496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점포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에서 그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 받아 공식 인증받은 점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