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를 명하다 –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진주문고

Vol.04 2024 Spring

진주를 명하다

책에 대한 마음을 나누는 문화의 내일, 진주문고

인구 34만 명의 중소 도시인 진주시에서 40년 가까이 든든하게 버텨온 터줏대감, 진주문고다.
진주문고는 책만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지금부터 이곳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리 모두를 성장시키는 ‘책의 집’ 진주문고

우리는 온라인 거대 서점에 들어가 클릭을 몇 번만 하면 구매하려는 책이 내 집 앞으로 배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종이책에서 마주했던 정보를 전자책이나 영상으로 접하는 것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한 탓에 지역 서점들은 하루하루가 위기일 수밖에 없다.

참고서나 잡지가 빼곡히 꽂혀 있었던 학교 근처 조그만 책방뿐만 아니라 동네 사랑방으로 이름을 떨쳤던 서점까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야심 차게 진주시에 매장을 냈던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도 마찬가지로 5년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뜻밖에 진주시는 물론 인근의 군 지역까지 매장을 점차 늘려나가고 있는 서점이 있다. 인구 34만 명의 중소 도시인 진주시에서 40년 가까이 든든하게 버텨온 터줏대감, 진주문고다.

전국 동네 서점 중 손에 꼽히는 규모
올해로 38년 차 동네 서점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진주시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4개의 매장에 상시 근로자 30여 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고 아르바이트 학생까지 합하면 근로자가
모두 50명 안팎이다. 전국 동네 서점 중에서 손에 꼽히는 규모이다.

진주문고의 시작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여태훈 대표는 진주시 가좌동 경상국립 대학교 앞에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인 ‘개척 서림’을 열었다. 지금은 서점이 진주시 전역을 통틀어 열댓 곳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70곳 넘게 있었던 서점 호황기였다. 이후 1988년에는 출판문화 정보 공간인 ‘책마을’을 열었다가 1992년에 평안동에 처음으로 ‘진주문고’ 간판을 달았다.이후 1999년에 현재의 위치인 평거동 본점 건물로 이전했다. 그리고 2004년에 가좌동에 MBC 지점을 열었고,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1년에 충무공동 혁신 지점을, 2022년에는 초전 지점을 잇달아 개점했다. 하지만 더는 새로운 서점의 문을 열지 않는, 아니 문을 열 수 없는 시대인 만큼 여 대표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새로운 매장을 내는 것을 결정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고민이 따랐다.

1986~

2024

실패 고민은 뒤로 하고 지역 주민의 부름에 응답하다

“사업가로서 매장 확장에 대한 꿈은 늘 있었지만 책을 읽지 않는 풍토가 퍼져나가는 상황에서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네 책방들이 모두 문을 닫아 근처에 갈 곳이 없다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도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사실 동네 서점이 문을 닫았을 때 인근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을 찾아 책을 읽는 사람은 30%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70%는 책을 읽는 생활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요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 대표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를 결코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동안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지게 된 지역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진주시 시민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책방들이 사라져 가는 상황 속에서 진주문고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서점이 호황이었던 좋은 시기에 태어나 과분한 사랑을 받았으며 그동안 잘 살았습니다. 이제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 대표는 상황이 좋지 않아 설령 실패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에게 맡겨진 과제를 한 번 시도해 보자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문을 연 두 매장은 동네 서점을 향한 갈증에 시달리던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조금 한산해지던 기존 매장 2곳도 시너지 효과가 있어 좀 더 활발해졌다.

3대가 함께 찾아오는 서점
진주문고

아버지 손을 잡고 방문하던 아이가 성장해 자신의 자녀를 데리고 찾아온다.

출향 청년에게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38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진주문고는 어느덧 3대가 함께 찾아오는 서점으로 자리 잡았다. 아버지 손을 잡고 방문하던 아이가 성장해 자신의 자녀를 데리고 찾아온다. 여 대표는 추억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오프라인 공간의 가치를 알아주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에 서점 역시 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터넷을 통한 구매와 전자책이 좀 더 싸고 편리하더라도 책은 어릴 적부터 이용해 온 진주문고를 방문해 구매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보이지 않는 응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마음과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이 정도 인구의 도시에 작게는 100평, 넓게는 500평짜리 오프라인 서점 4곳이 탄탄하게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겁니다.”
몇 년 전 여 대표에게 낯선 번호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준 사람은 진주시에서 서울시 소재 대학에 진학한 이들이 모여 교류하는 일종의 재서울 진주향우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당시 국내 2위의 서적 도매업체인 송인서적이 부도가 나면서 각종 매체에서 예상되는 출판업계의 피해를 앞다투어 보도하던 시기였다.

“학창 시절 추억이 서린 진주문고가 행여나 잘못될까 염려되어 전화를 한 것입니다. 그 무리 중 한 사람이 제 기억에 남아 있던 학생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도 역시 제가 교류하던 서점의 단골인 탓에 부친에게 연락처를 물어 연락한 것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데 진주문고는 괜찮은지 걱정되어 전화했다고 안부를 물어 왔는데 그 말이 정말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10년 이상 서점을 찾았던 학생들이 사회의 일꾼이 되어
진주문고를 회상
하고, 고향을 방문할 때 들러 책을 한 권씩 사가는 그 소중한 마음이
지금껏 진주문고를 굳건히 버티도록 한 큰 버팀목입니다.

책방을 매개로 뻗어 나간 풍성한 문화 프로그램

진주문고는 책만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진주시 평거동 본점에는 카페 ‘진주커피’, 생활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진주’,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 강연장과 세미나실 등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커피를 즐길 수 있고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며 여서재 아카데미(강연), 북클럽(독서 모임), 인문 학교(독서 캠프), 전시회, 영화 상영회 등의 다양한 문화 행사를 즐길 수 있다. 지난 2018년에 리모델링을 한 뒤에 이러한 번듯한 공간들을 이용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지만 사실 그 시작은 진주문고 초창기부터 시행되고 있었다.

카페 진주커피

진주문고 문화관 여서재

책상 속 생활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진주

당시에는 지금처럼 SNS로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지 않았어요.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이들이 책방을 찾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지요.
퇴근한 뒤에 서점으로 어슬렁어슬렁 모여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저는 책방 문을 닫고 나면 그들과 함께 술도 마시고 차도 마시며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끼리 재미있게 놀아보고자 ‘문학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출판되기 전인데 책 마니아들끼리 한패가 되어
관광버스를 빌리고 답사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서재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의 구심점 역할 톡톡

이처럼 책방을 매개로 한 문화 기행에서부터 파생된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 구심점을 이루는 것은 여서재 팀이다. 전담 직원 2명이 아이디어를 내고 다양한 서점 안팎의 기획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 서가를 구축하려는 기관들의 의뢰에 따라 주제별로 책을 선별하는 책 큐레이션에 앞장서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이병진 여서재 팀장은 “최근 진주 진양고등학교 학생 휴게 공간에 책을 선별해 서가를 제작하는 작업을 재미있게 진행했습니다. 서점에 다양한 지역 정보가 모이다 보니 책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 기획을 선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하동책방’
고향 땅 하동 폐교를 활짝 열다

지난 1월 27일에 하동 악양면에서 진주문고 ‘하동점’이자 독립 서점인 ‘하동책방’이 문을 열었다.
“하동은 제 고향이에요. 저는 제 몸에 지리산과 섬진강의 유전자가 흐른다는 표현을 종종 합니다. 하동은 시골인 탓에 해가 진 뒤에는 어둠 속 적막강산이 됩니다. 그래서 서점을 열어 어두워진 하동에 빛을 밝히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방은 너와 나, 우리의 성장을 돕는 ‘책의 집’이기도 합니다. 그 공간을 고향에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막연한 열망을 하동에서 공정 여행사 ‘놀루와’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조문환 대표와 오래전부터 공유하던 중에 마침내 의기투합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놀루와가 옛 축지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악양생활문화센터의 위탁 운영을 맡으면서 빈 곳에 그동안 열망하던 서점을 열어 보자는 이야기로 연결된 것이다.
마침 정년퇴직한 뒤에 하동으로 귀촌 생활을 구상했던 여 대표의 오랜 벗인 강성호 씨가 책방 지기를 수락하면서 오랜 꿈은 현실이 되었다.

거리에 향기를 불어넣어 주는
서점이라는 공간의 가치

폐교 전 축지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동네 어르신부터 SNS 후기를 읽은 뒤에 호기심을 품고 서울시, 경기도, 전라도 등의 다양한 지역에서 방문객들이 찾아오면서 이제 갓 문을 연 신생 서점임에도 꽤 희망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 대표는 서점을 만드는 것은 자신의 일이지만 이를 지속해서 지켜갈 수 있을지는 그 공간의 사회적 역할에 지역 주민들이 얼마나 공감해 주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거리에 향기를 불어넣어 주는 서점이라는 공간의 가치를 안다면 인터넷 서점을 10번 방문할 때 1번이라도 동네 서점을 방문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10권의 책을 살 때 동네 서점에서도 1권 정도의 책을 구매하여 동네 서점이 계속 버틸 힘을 달라고 말한다. 물론 동네 서점 역시 부단한 노력에 나설 계획이다. 여 대표는 “변화나 변신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것입니다. 좇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를 제때에 따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는 알고 그중 몇 가지라도 받아들여 동네 서점에 접목해 보고 내실을 기하려 합니다.”라고 자신의 포부를 힘 있게 밝혔다.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진양호로240번길 8 진주문고

문의

055-743-4123